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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전국만해백일장 만해상 작품(만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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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교청년회 작성일17-04-12 17:10 조회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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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한 것들

 

 

일반

노 은 희

 

나이가 들면서 새삼 세상살이가 녹록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갓 네 살을 넘긴 아들을 두고 남편은 조심스럽게 권고사직 얘기를 꺼냈다. 매사 진중하고 책임감이 강한 남편이었다. 혼자서 많은 고민을 거듭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베아링을 수출하는 튼실한 중소기업이었지만 장기화 된 경기불황을 피해 갈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남편은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퇴직금과 위로금이 나올 거야. 최대한 빨리 직장을 구하도록 할게.”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남편의 뜻을 받아 들여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외벌이가 아니라는 것, 가정에 헌신적인 남편은 새직장을 찾고자 애쓸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속 위안이 되었다. 남편은 이력서를 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적지 않은 나이는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기 어려웠고, 운이 좋게 서류 전형에 합격하더라도 말주변이 없는 남편은 면접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당장 생활비가 쪼들리는 것은 둘째였다.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자신감을 잃어갔다. 손에 쥔 것이 없는 것보다 남편의 축 쳐진 어깨를 보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 가족 모두가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남편이 회사에 다닐 때보다 더욱 좋은 옷을 선물했고, 딛는 걸음마다 아내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구두코도 맨질맨질 닦아 주었다. 신기한 것은 고통의 터널 속에서 가족은 더욱 단단해 진다는 사실이었다. 반년이 채 못 되었을 때였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는 남편의 얼굴이 말갛게 빛나고 있었다. 남편이 드디어 직장을 구했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남편은 사뭇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유품관리사라는 뜨는 직종이라며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짐을 정리해 주는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내게는 너무 충격적인 일을 밝고 건강하게 말 하는 남편이 처음으로 남처럼 여겨졌다. 남편은 나의 황망한 표정은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보람 된 일이라고 생각해.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세상에 만만한 일이 어디 있겠어. 당신은 나 믿지?”

왜 하필이면 유품관리사냐고, 새로 구입한 신상 양복과 멋진 구두가 걸맞는 일은 없더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매일같이 죽음을 접하며 사는 일은 절대로 만만한 일이 아니며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직장을 구해 보라고 설득도 해보고 싶었지만 너무도 간절하게 가장의 떳떳한 삶을 살고 싶은 남편의 눈망울을 외면 할 수 없었다.

유품관리사라는 생소한 직업을 통보하듯 내게 알린 남편은 2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성실하게 일하고 있다. 망자가 되어 만난 인연도 억겁의 인연이라며 쓸쓸하게 삶을 마감한 그네들을 위해 정성껏 이삿짐을 싼다. 사회가 어렵다보니 절절한 죽음의 사연도 많다. 치매에 걸린 노모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외아들을 꼭 끌어안은 채 굶어 죽은 이야기, 고시원에서 살던 연고 없는 청년의 헛헛한 주검, 무공훈장이 걸려 있는 할아버지의 고독사.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조국은 할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다며 남편은 가슴 저려했다.

오늘도 남편은 만만하지 않은 일터로 향한다. 징글맞은 송장벌레도, 이미 백골화가 진행 된 시체도, 저절로 코를 움켜쥐게 만드는 시체 썩는 냄새조차 남편에게는 피해 갈 수 없고, 물러설 수 없는 만만한 것들이다. 누군가 생을 마감한, 꺼려지는 자리를 매일 찾아 가야 하는 고된 삶이지만 남편은 직장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소박하게 웃는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고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란 금강경의 글귀도 읊어 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오직 가족을 위해 가장의 몫을 감내하는 남편, 산 사람이 죽은 자와 마주하는 것이 말처럼 쉽겠는가. 어려운 현실에서도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한 여자의 남자로, 한 아이의 아버지로 열심히 살아주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고생하는 든든한 남편 덕분에 예전에는 버거웠던 힘에 부치는 업무도, 직장 상사의 잔소리도, 워킹 맘의 고달픔도, 육아의 스트레스까지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것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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