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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의 불교대전] 한용운 채근담 -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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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한불청지기 작성일21-05-28 11:23 조회1,4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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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채근담 강의


머리말

 

사람이 사물에게 부림을 받는다면 그것은 사물의 변지騈指이지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발가락이 서로 붙은 변지를 보고 그것을 불쾌히 여기지도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변지가 있는 몸과 그것을 병으로 여기고 불쾌히 여겨야 할 정신까지 하나로 합쳐져 사물의 변지 노릇을 하면서도 통탄할 줄 모르니 어찌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사물에게 부림을 받게 된 사람은 후세에 올바른 인격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사물의 변지 노릇을 하는 것은 통탄할 일이고 사물에게 부림을 받는 사람은 후세에 인격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면, 사람으로서 쓸모없는 발가락처럼 되어 사물의 변지 노릇을 하는 자들이 역사상에서 종적이 끊어진들 아까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발가락처럼 될 뿐 아니라 변지 노릇까지도 남에게 뒤질세라 걱정하며 앞 다투어 하는 자들이 세상에 왜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주체적으로 사물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봉황의 깃털이나 기린의 뿔처럼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세상에는 분에 넘치는 권력을 얻기 위해 남의 턱짓과 눈짓에 따라 허리를 만번씩 굽히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권력을 위해 변지가 된 것입니다. 또 부정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 남이 한번 찡그리고 한번 웃는 얼굴빛에 따라 백 번이라도 온 몸을 다 바쳐 일을 하면서 만족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이익을 위해 변지가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욕망을 이기지 못하면 사람이 욕망의 부림을 받는 것이니 변지는 이상학 여길 일도 못 됩니다. 그렇다면 이세상의 수많은 값비싼 의관을 볼 때마다 좋아하는 자는 엄연히 인간은 인간이로되 그 정신은 한 번만이 아니라 이미 여러 번 변지가 된 것입니다. 그 정신은 마치 봄의 성벽에 떨어지는 꽃잎과 같고 급한 물살에 휩쓸려 내려온 돌과 같아 헤아려 볼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것이니 이것은 욕망에 구속이 되어 스스로 사물에게 사역을 받는 것입니다.

 

혹 이와 반대로 호탕함이 지나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물을 추구로 여기고 몸과 마음을 연기나 구름같이 덧없는 것으로 보는 이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방랑을 능사로 삼고, 거칠고 정신이 나간 듯 사는 것을 지덕으로 삼아 세속을 떠나 돌아올 줄 모르고 정신을 놓아버리고 거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어찌 사람의 도리를 아는 것이겠습니까.

 

이와 같이 인간세상에서 사물의 변지가 된 자와 호탕함이 지나친 자를 빼고나면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입니다. “인간세상이여, 인간세상이여,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벗어나야 하고, 세상을 벗어나고도 세상에 살아야 하리로다하고 성.인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홍진이 가득한 속세에서 살아도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강물에 대한 취미를 잃지 말고, 소슬하고 적막한 곳에서 지내면서도 천하를 구제할 뜻을 품고 지내야 하겠습니다. 곤궁하고 참단한 지경에 처해서도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자연의 활기에 몸을 맡기고, 권력과 복락을 누리며 살 때에도 깊은 물 가까이에 다가가며 살얼음을 밟을 때처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자유롭된 방탕하지 않고 포용하되 집착하지 않고 천문과 지리를 살피고 마음을 편안히 가질 수 있다면 가는 곳마다 자유세계일 터이니 어느 때인들 마음대로 되지 않을리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되려면 오직 정신을 수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근래에 정신수양을 부르짖는 사람이 줄을 잇는 것도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조선 정신계의 수양은 과연 어떠한지 물어봅시다. 사물의 변지가 되는 것을 면할 수 있는지, 호탕함이 지나치지 않는지, 가는 곳마다 어떤 세계인지, 나날이 어떤 시절인지, 정신수양의 길은 또 어떠한지. 인적 없는 산으로 고개를 돌리니 구름과 나무가 아득합니다. 이에 채근담을 강의합니다. 눈 속에 티끌 하나가 들어 있으면 공화가 어지럽게 떨어집니다. 조선 정신계 수양의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을묘년(1915) 620일 한용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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