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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야심경 ] 조견의 체계(사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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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11-16 14:02 조회3,7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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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의 체계(사성제)
-괴로움! 그리고 벗어나기

위에서 현실에 대해
명확하고도 편견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찰하여,
일체제법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얻은 결론은 현실의 여실한 모습은 바로 ‘괴로움’ 이라는 것이
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장에서는
그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배울 차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오직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만 말씀을 하셨다고
경전에 수 차례에 걸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팔만 사천의 대장경이 있고, 수많은 경전이 있으며,
45년 여 동안 전법포교를 하셨지만,
그 많은 양의 경전과 기나긴 기간 동안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바로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가 바로 사성제(四聖諦)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말 그대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라는 의미입니다.
사성제는,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를 말합니다.
그럼 하나 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고성제 - 생노병사

고성제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실을 여실히 살펴보니 괴로움이다’ 라고 하는 괴로움의 진리입니다.
태어남이 괴로움이고, 늙는 것이 괴로움이고,
병드는 것, 죽는 것이 괴로움이며,
사랑하는 대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 괴로움이고,
미워하지만 보아야 하는 것이 괴롭고,
구하고자 하나 얻지 못하는 것이 괴롭고, 오온이 치성하여 괴롭습니다.

2)집성제 - 십이연기

이러한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 괴로운지를 알아야 그 원인을 소멸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집성제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노병사(老病死)’의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하여
고요히 일체의 경계를 여실히 조견하시고는,
그 원인이 생(生)에 있음을 아셨습니다.
태어났기에 노병사의 괴로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니,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의 생사 윤회하는 테두리인
유(有)로 말미암는 것임을 아셨고,
그 원인은 다시 어떤 대상에 집착하는 취(取)에 있음을 아셨으며,
또 그 원인은 애(愛), 그리고 그 원인은 수(受) ……,
이렇게 하나 하나 그 원인을 고찰해 올라가니
결국에는 무명(無明)이 생로병사의 근본 원인임을 여실히 아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이 연기입니다.

무명이 생사 윤회의 근본 원인임을 알았지만,
무명은 말 그대로 근본이 되는 원인이기에,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현실에 비추어 보니,
애(愛)와 취(取)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시 말해, 좋아하는 것을 취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려는 취착심,
집착심이 바로 생사윤회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사의 괴로움을 없애려면 그 원인을 없애야 하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행의 초점(焦點)은 무집착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수행의 핵심, 본바탕은
집착을 놓아버리는 방하착(放下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미혹하게 하여
더럽히게 하는 모든 정신작용을 한마디로 번뇌(煩惱)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괴로움의 원인인 것입니다.

3)멸성제 - 열반, 해탈

이러한 괴로움의 원인이 소멸된 상태를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라 하여 멸성제(滅聖諦)하고 합니다.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기 위해서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 실천의 길이 바로 도성제(道聖諦)로,
괴로움 소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진리를 말합니다.

4)도성제 - 중도, 팔정도

도성제는 괴로움의 소멸, 즉, 열반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도성제는 괴로움을 멸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그 열반에 이르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중도(中道)라고도 부르는 것으로,
양극단을 떠난 길입니다.

즉, 지나치게 쾌락적인 생활도 아니고,
반대로 극단적인 고행생활도 아닌,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의 길을 말합니다.

거문고 줄은 지나치게 팽팽하거나,
지나치게 느슨해도 좋은 소리가 날 수 없고,
가장 좋은 소리를 위해서는 그 줄이 적당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하듯이,
열반을 얻기 위한 수행의 길 또한 극단적인 것을 피하고,
중도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중도를 구체적으로 말한 것이 바로 팔정도입니다.
팔정도의 정(正)이 바로 중도의 중(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불교 수행의 세 가지 핵심인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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