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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삼매 들게되면 깨달음 얻을 수 있어” /보광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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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강 김영만 작성일09-11-23 16:18 조회4,811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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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삼매 들게되면 깨달음 얻을 수 있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것에 있다.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은 상구보리이며, 중생을 제도하는 것은 하화중생의 일이다. 정토교학에서는 신심과 원력으로 깨달음과 중생제도를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타력적인 힘에 의해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타력이란 불보살의 본원력과 가피력에 의해 우리가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염불이다. 염불이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입으로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稱名念佛)과 부처님의 상호나 공덕을 관하는 관념염불(觀念念佛)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염불의 기원은 부처님 당시부터 있었다. 부처님의 교단은 불 법 승 삼보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 최초의 의식이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도리이다. 초기에는 불교교단에 귀의하고자 하면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을 외우면서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게 되면 부처님께서 “선래비구야”라고 하여 출가가 허락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무불”이 바로 염불의 시초이다. 따라서 염불은 불교교단에 대한 신앙의 표명이며, 귀의의 방법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대소승을 막론한 모든 불교의식에는 반드시 삼귀의로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깨달음에 들어가는 첫 번째의 관문이며, 사홍서원은 중생구제와 보살도 실천의 마지막 서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승불교의 모든 신앙행위는 믿음의 표현인 삼귀의와 대비원력의 발원인 사홍서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염불로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논사는 인도의 용수보살이다. 그는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娑論)〉 ‘이행품(易行品)’에서 부처님을 믿는 신불(信佛)만으로도 아유월치(阿惟越致) 즉 불퇴전지(不退轉地)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불법에는 무량한 문이 있다. 세간의 도(道)에 난(難)과 이(易)가 있으니 육로로 걸어가는 것은 고행이며, 수로로 배를 타고 가는 것은 편안하고 쉬운 일이다. 이와 같이 보살의 도에도 난행정진(難行精進)하는 사람도 있으며, 또한 신방편(信方便)의 이행(易行)으로 빠르게 아유월치(阿惟越致)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는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방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다. 어려운 정진방법을 선택하는 난행도(難行道)와 쉬운 방법인 이행도(易行道)로 구분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이행도인 부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도 불퇴전지인 야유월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다겁생래 동안 닦은 무량한 수행력과 한량없는 중생구제의 본원력의 공덕력에 의해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용수보살은 염불로서 현세에 아유월치에 이르러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세친보살은 〈왕생론(往生論)〉에서 극락왕생행으로 찬탄문(讚歎門), 예배문(禮拜門), 작원문(作願門), 관찰문(觀察門), 회향문(回向門)의 오염문(五念門)을 설하면서 염불을 찬탄문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용수가 염불로서 현세에 아유월치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으나, 세친은 염불로서 내세에 왕생하여 가능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중국의 담랑(曇鸞), 도작, 선도 등에게도 계승되었다.








칭명염불.관념염불 수행으로 부처님 친견.견성 가능





간절한 신심과 불보살 본원력.가피력에 힘입어 성불








그런데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등의 정토삼부경과 〈반주삼매경〉에서는 염불로서 견불(見佛)과 왕생을 설하고 있다. 정토계 경전에서는 견불은 깨달음으로 여기며, 왕생은 성불로 보고 있다. 〈무량수경〉의 제18원 십념왕생원(十念往生願)에서는 오역죄와 정법을 방방한 자는 제외하고 누구나 십념염불(十念念佛)로 왕생이 가능하다고 설하며, 왕생은 삼배구품(三輩九品)에 따라서 왕생한다고 설하고 있다. 그러므로 왕생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아미타불의 설법을 들어서 성불을 보장받으며, 결국은 모습과 이름이 모두 아미타불과 같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동명동호(同名同好)가 되어 모두가 아미타불이므로 부처와 극락성중이 둘이 아님을 설하고 있다.





한편 〈관무량수경〉의 제8 상상관(像想觀)에서는 “제불여래는 법계신(法界身)이므로 일체중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느니라”고 하면서 “마음이 부처를 지으면, 마음이 곧 부처(是心作佛是心是佛)”이라고 한다. 즉 중생의 마음이 부처의 마음으로 바뀌면 부처의 마음은 곧 부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마음이 곧 부처 (是心是佛)’라고 하는 말씀은 〈관무량수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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